만월산 이야기

게시물열람
제목

동안거 선방에서

작성자현종스님
등록일2010년 12월 27일 (12:57)조회수조회수 : 4,189
첨부파일
  • 201012271293442927.jpg (0)
현종스님 / 논설위원·강릉 불교환경연대 대표



여명이 밝아오면 가야산 정상이 한 송이의 연꽃으로 피어난다. 항상 부러워만 하고 그리워만 하다 수도암에 동안거 방부를 들여 살고 있다.

수도암은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량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경관이 뛰어나 수도하기에 좋은 곳이라 터를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량이 편안하고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새벽 3시 도량석 목탁소리에 일어나 찬물에 세수를 하고 죽비소리에 입선에 든다. 방선 후에 아침 공양을 하러 가는 길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셨다는 샛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는지를 떠올리며 횐희심까지 난다.

별빛 달빛 의지한 포행

공양 후에는 포행을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별빛과 달빛에 의지한 포행 길은 자연과 나만의 색다른 만남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도 부처님의 설법 소리로 들린다. 밖에 있을 때는 새벽 예불이 끝나자마자 교계신문부터 인터넷까지 모든 매체의 정보를 보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내가 그렇게 세상 돌아가는 현실을 알고자 뉴스를 찾아보았지만, 실상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방부 드린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뉴스를 접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느 것 하나 몰라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우주는 섭리대로 아무 탈 없이 정상 운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밖에서는 핸드폰을 언제나 들고 다녔다. 시도 때도 없이 뭐가 그리 바쁘고 할 말이 많았는지 되돌아본다. 지금은 전화를 안 갖고 다녀도 아무 불편한 것이 없다. 오히려 내겐 너무 편안하고 좋기만 하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니 참으로 어리석게 살아왔음을 절절히 느낀다.

여기서는 만날 사람도 없고 오가는 곳도 없다. 인연 따라 오면 만나고 인연 따라 가면 구름처럼 흘려보낸다. 또 그렇게 만나기도 할 것이다. 인연은 주어지는 것이라 하지만, 나는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주관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잘 나서 잘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철마다 산문을 걸어 잠그고 화두 일념으로 수행 정진하는 많은 스님들의 정진력으로 한국불교가 존재하고 있고, 더불어 나도 살아왔던 것이다.

조그만 절에 살면서 들렸던 교계 소식이 마음의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이곳 수도암 선원에서 불교의 미래를 보았다. 정말 여법하게 수행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전의 내가 부끄러웠다. 나로 하여금 재발심하게 만들었다.

수도암이 있는 곳의 마을 이름도 도(道)를 닦는 수도리(修道里)이다. 그래서인지 절에서 일하는 부목 처사도 묵언패를 달고 다니면서 묵언 기도를 했다. 그러니 스님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결제가 시작되면 소임 방을 짜게 된다. 한 철의 계획을 세우는데 이곳 가풍에 맞게 반 철 산행도 안한다. 음력설이면 대부분의 사찰에서 성불도 놀이나 윷놀이를 하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기로 대중이 뜻을 모았다.

하심을 배우다

큰 방에는 24시간 좌복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누구나 언제라도 앉고 싶을 때 앉을 수 있다. 선원에 함께 사는 스님들이 얼마나 겸손하고 공부가 많이 되었는지 내가 어디다 몸을 두어야 할이지 모르겠다. 바깥에서는 위아래가 없어져 가고 온 세상이 아수라장과 같은데 이곳은 모든 것이 순서가 있고, 일의 진행이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다. 소임을 짤 때 법납이 많은 스님이 굳이 하소임인 정통(淨桶)을 하겠다고 하기에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번 철에는 하심하는 마음으로 해우소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청소 하는 모습을 보니 수행하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코멘트현황
상불경
상불경 | 10/12/27 21:26
단아한 모습으로 좌복위에 우뚝히 앉아계실 스님..
이천오백 여년전 새벽하늘 보고
견성오도하신 부처님을 떠올리며
동방의 어느 조그마한 불국 도량. .
새벽하늘 샛별을 올려다 보며
크고 크신 우리부처님 제자되었음에
가슴에 뜨거운 물결이 일었을
스님의 천진한 환희심..
이글을 대하는 저 또한
덩달아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 옵니다.
스님...!
부디 독야청청 곧게 뻗은 저 겨울 소나무의 기상처럼
건강한 몸과 굳건한 신심으로써
남은 이 한철,
무장무애하게 잘 회향하시길
부처님께 간절히 발원해 봅니다...
10/12/27 21:26
하늘사랑
하늘사랑 | 11/01/16 19:12
스님!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11/01/16 19:12
코멘트작성
※ 삭제나 수정시에 사용할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게시물처리 버튼
새글 작성하기 ▲ 다음글 보기 ▼ 이전글 보기 목록보기
게시판검색
자유게시판
순번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수
724 날아간 뻐꾸기[6]
/ 09-07-02 (목) / 조회 : 4,163
6
09-07-02 12:484,163
723 뻐꾸기가 곧 둥지를 떠나겠지요?[2]
현종 / 09-07-01 (수) / 조회 : 4,275
2
현종09-07-01 09:474,275
722 1595년 한 여인이 한글로 쓴 亡夫歌[2]
崔圭軾 / 09-06-22 (월) / 조회 : 4,313
2
崔圭軾09-06-22 18:264,313
721 바보같은 엄마새?[3]
현종 / 09-06-20 (토) / 조회 : 4,381
3
현종09-06-20 10:054,381
720 모여라 친구들~7월 11일(토)어린이, 청소년 포교전진대회
포교원 / 09-06-15 (월) / 조회 : 4,213
포교원09-06-15 10:084,213
719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기행
좋은벗들 / 09-06-11 (목) / 조회 : 4,110
좋은벗들09-06-11 16:044,110
718 현덕사에 가는 이유[1]
박모정 / 09-06-06 (토) / 조회 : 4,062
1
박모정09-06-06 22:334,062
717 그 동안 안녕하섰습니까?[2]
엘머휄트캄프 / 09-06-03 (수) / 조회 : 4,148
2
엘머휄트캄프09-06-03 12:554,148
716 단오 맞아 ‘경로잔치’ (불교신문기사입니다.)[1]
현덕사 / 09-06-01 (월) / 조회 : 4,122
1
현덕사09-06-01 08:104,122
715 현종스님 / 오체투지 순례에 동참하며
별밭 / 09-05-25 (월) / 조회 : 4,119
별밭09-05-25 23:004,119
714 현덕사 단오 경로잔치[1]
현종 / 09-05-23 (토) / 조회 : 4,135
1
현종09-05-23 18:394,135
713 [RE] 현덕사 단오 경로잔치
별밭 / 09-05-24 (일) / 조회 : 1,232
별밭09-05-24 20:341,232
712 현덕사 보살님들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2]
박혜숙 / 09-05-20 (수) / 조회 : 3,955
2
박혜숙09-05-20 17:343,955
711 내 마음속에 자[3]
윤명숙 / 09-05-12 (화) / 조회 : 4,221
3
윤명숙09-05-12 21:124,221
710 봄날엔[2]
/ 09-05-08 (금) / 조회 : 4,135
2
09-05-08 10:404,135
709 "부처님 오신날" 현덕사에서 보내며..[1]
류대현 / 09-05-03 (일) / 조회 : 4,214
1
류대현09-05-03 18:354,214
708 오늘은 좋은 날
명법 / 09-04-28 (화) / 조회 : 4,345
명법09-04-28 09:464,345
707 자료 소개
김영은 / 09-04-25 (토) / 조회 : 4,119
김영은09-04-25 11:374,119
706 봄날은 계속되고
길상 / 09-04-22 (수) / 조회 : 4,254
길상09-04-22 07:594,254
705 1박2일-현덕사 연등만들기 템플스테이를 다녀와서...[5]
/ 09-04-14 (화) / 조회 : 4,529
5
09-04-14 17:314,529
게시판 페이지 리스트
새글 작성하기
계좌안내 : [농협] 333027-51-050151 (예금주 : 현덕사)
주소 : (25400)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싸리골길 170 (삼산리, 현덕사) / 전화 : 033-661-5878 / 팩스 : 033-662-1080
Copyright ©Hyundeoksa. All Rights Reserved. Powerd By Denobiz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