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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갖지 말라”는 스님 말씀…그래도 현덕사에 다시 올 이유

작성자조용석
등록일2021년 12월 22일 (19:09)조회수조회수 :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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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風磬) 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고즈넉한 사찰 처마 끝 바람에 흔들리며 종소리인 듯 바람 소리인 듯 흩어져가는 소리. 조용한 사찰에 사람마저 없다면 풍경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바닥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릴터다. 이윽고 바람이 잦아들어 풍경소리도 멈추면 아직 다 떠나지 않은 잔바람 소리만 살짝 몸을 감싸고 행복한 공허함이 뒤따른다. ‘힐링’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시대, 풍경소리는 내가 치유되고 있다고 느끼는 귀한 순간이다. 

현덕사 템플스테이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되는 것보다 꼬이는 것이 많고 무엇하나 내 마음 같지 않은 이때, 풍경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었다. 대형 사찰에 가면 더 많은 프로그램과 더 좋은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크겠으나 내가 원하는 고요함을 찾긴 어려울 것 같았다. 인터넷을 찾으니 ‘오롯이 혼자고 싶을 때’, ‘조용히 명상하고 싶을 때 찾는’ 등등 수식어가 붙은 절이 현덕사였다. 고민하지 않고 전화를 드리고 예약했다. 내가 사는 서울 양천구에서 약 240㎞, 3시간을 못 되게 달려 오대산 줄기 만월산 중턱에 자리한 현덕사로 향했다. 

소금강을 낀 큰 도로에서 산 중턱까지 1.6㎞를 더 들어가니 현덕사다. 작은 갈색 강아지(현덕이) 한 마리 그리고 불편한 걸음새로 노견(老犬)임이 뚜렷해 보이는 하얀 강아지(보리)가 짖는다. 사찰 강아지라고 사람을 반길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몇 번을 짖어도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에 두 강아지는 항상 그랬다는 듯 짖기를 멈추고 무심하게 자기 볼일을 보러 떠난다. 두 강아지의 짖음이 멈추자 풍경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풍경소리도 곧 멈추고 바람도 잦아들자 간절히 바랐던 외롭지 않은 공허함이 몸을 감싸온다. 배시시 웃었다. “잘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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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사 템플스테이는 휴식형으로 프로그램도 단출하다. 아침 5시 예불을 시작으로 아침 공양-스님과 차담-포행(산책)으로 오전 일정이 끝난다. 오후는 더 여유가 있다. 1박2일로 오는 이들은 첫날 오후 3시 입실 후 사찰안내 절차가 있지만, 더 길게 묵는 이들은 둘째 날부터 낮 12시 점심 공양-저녁 공양(오후 5시)-예불-단주 만들기-취침(오후 9시)으로 오후가 끝난다. 점심 공양 후 강릉 시내에 다녀와도 충분한 여유다. 그저 푹 쉬고 푹 자고 가라고 하신다. 공양을 하는 장소인 만월당 벽에는 ‘억지로라도 쉬었다 가소’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조용한 현덕사에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방마다 개별화장실이 딸린 단출한 숙소도 지내기 모자람이 없다. 

주지스님인 현종스님은 꾸미거나 돌려 말하지도, 어려운 말도 쓰시지도 않는다. 스님은 “젊은이들에게 내 항상 3개 말해준다. 첫째는 남한테 많이 베풀으라. 괜히 돈 아끼서 인색한 사람 되지 말고이 고민 말고 베풀고 많이 나누라꼬. 그게 다 씨를 뿌리는 거고 그래야 돌아오는 게 있데이. 두 번째는 종교를 믿지 말그라. 기도하고 빌어서 될 거라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돼쓰야지. 차라리 공부하고 더 좋은 선생을 찾는기 나따. 세 번째는 꼭 책을 읽그래이. 아니면 신문이라도 꼭 읽고이.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다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 말그라이.” 

차 대신 커피를 내려주는 현종스님은 휴대용 그라인드로 갈아낸 원두를 거름용지에 넣고 무심하게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어느 날은 코스타리카 원두라고 하셨고 어느 날은 에티오피아 원두라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한 원두 이름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두 손으로 잡아 든 투박한 찻사발에 담긴 커피가 향도 맛도 참 좋다. 일터에서 하루에도 예닐곱잔 마셨던 커피맛과 달랐다. 

마지막 날 현종스님과 포행을 하며 여쭸다. “스님 사람 마음이 참 어렵습니다. 제가 호의를 갖는다고 해도 상대가 다 제 마음 같지는 않더라고요. 조직도 그렇고요. 노력해도 잘해줘도 몰라줄 땐 어찌합니까.” “그럼 한번 니가 더 잘해주라, 더 잘해주믄 또 우째될지 아나.” 스님이 예불 중 말씀했던 사섭법(四攝法)이 떠올랐다. 문득 윤대녕 작가가 ‘어머니의 수저’에서 장아찌를 설명하며 인용했던 금강경 한 구절,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다음을 내어라’(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도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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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행길을 함께한 현덕은 처음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잘 따라오더니 자기에게 잘해주는 불자의 집을 들른 후 절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스님의 호통도 나의 다그침도 소용없었다. 현덕은 잡으러 온 나를 살짝 깨물더니 도망갔다. 네발 달린 짐승의 날램을 쫓아가긴 버거웠다. 스님이 말씀하신다. “동물도 다 니 지들 고집이 있는기라. 사람 말을 안 들어. 다 그런 기라.” 사람은 더하지 않겠나, 내 마음 같기를 바라는 게 욕심일터다.  

3박4일 일정을 마치고 현종스님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손이나 함 잡오자, 담에 또 은제라도 전화만 하고 꼭 온니.” “네, 스님 연락드리겠습니다.” 투박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 속 따듯함이 그윽하다. 일정 내내 세세하게 살펴주신 소녀 같은 담연스님께도 꾸벅 인사를 드렸다. 

현덕사를 벗어나는 순간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대로임을 느낀다. 며칠의 템플스테이로 완전한 마음의 평화가 오지도 않는다. 스님 말씀대로 무턱대고 기도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음을 안다. 결국 부딪혀야 할 일이다. 조금은 다시 부딪힐 힘을 얻었다. 언제든 다시 오라는 스님의 말씀은 전쟁터에서 잠시 쉬어갈 휴게소가 생긴 것 같아 든든했다. 서울로 돌아와 내 방에 앉으니 벌써 풍경소리가 그립다. 새벽 4시50분 예불을 시작하기 위해 대웅전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시던 담연스님이 보름달 달빛에 비춰지는 모습이 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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