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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수미산정에서 현 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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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09년 11월 30일 (12:39)조회수조회수 : 2,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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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현종스님 / 논설위원·강릉 불교환경연대 대표

얼마 전 도반이 있는 산사(山寺)를 다녀왔다. 어느새 단풍도 다 떨어지고, 나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도반을 만난다는 기쁨도 잠시 뒤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찬바람이 지나갔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산길 옆에 있는 감나무들이었다. 지난 가을 초입에 왔을 때만 해도 마치 108염주를 걸어 놓은 듯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마음까지 넉넉해져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새들의 겨울양식

그런데 그날은 감나무에 감이 하나도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따간 것인지, 아니면 등산객들이 싹쓸이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 감나무에게서 ‘무소유의 기쁨’을 발견하기 보다는 씁쓸한 생각이 앞섰다. 그렇다고 감나무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감을 몽땅 털어간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을 무렵이면 감나무는 악동들의 차지였다. 떫은 감을 한입 베어 물고 혼났던 기억이 아련하다. 마을 어른들은 감을 따서 홍시를 만들었다. 눈 내린 겨울밤 가족들이 화롯불 곁에 모여 앉아 먹던 홍시는 꿀맛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렇게 감나무는 많은 것을 주었다. 그 혜택은 사람만 받지 않았다. 마을의 어른들이나 악동들은 감을 털어도, 한 가지 무언의 약속을 지켰다. 감나무에 감이 많이 달려 있던, 그렇지 않던 반드시 지켰던 약속이다. 언제 누가 그런 약속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약속을 어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까치밥’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의 감나무마다 몇 개의 감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남은 몇 개의 감은 까치를 비롯한 새들의 겨우내 양식이 되었다. 지금보다 살림살이가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까치밥’을 남겨놓는 여유가 우리에게는 있었다.

그런데 도반을 만나기 위해 찾았던 어느 산길에 있는 감나무에는 감이 단 한개도 달려 있지 않았다. 물론 남겨놓은 몇 개의 감이 바람에 떨어질 수도 있고, 성미 급한 까치가 와서 다 먹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10여 그루의 감나무가 모두 같은 상황인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같은 일이 여기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곳도 대부분 감나무 역시 비슷한 처지다.

염치없는 인간의 욕심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지금이 더 살기 좋다고 한다. 먹을거리도 풍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굳이 까치밥까지 건들지 않더라도 배를 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이유로 까치밥에 손을 댈까. 그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고,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은 아닐까. 돈이 전부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올 겨울 까치들은 어떻게 겨울을 지낼까. 사람들이 까치밥 감나무에 대해 기억하고 있듯이, 까치들도 까치밥 ‘감나무의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단 한 개의 까치밥도 남겨 놓지 않고, 자신들의 배만 두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까치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옛날이 좋았어. 그래 많이 드시오.” 허탈하게 날갯짓을 하며 돌아가는 까치에게 염치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나부터 얼굴이 붉어졌다.

 

[불교신문 2579호/ 12월2일자]

2009-11-28 오후 12:33:51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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