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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칼럼] 절의 진정한 의미

작성자현덕사
등록일2023년 03월 14일 (10:39)조회수조회수 : 1,492

우리의 옛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 만나거나 오랜만에 만나면 큰절로 인사를 했다. 첫인사가 절이었다. 혼례식도 마당에 혼례상을 차려 놓고 신랑신부가 마주 서서 집례자의 말에 따라 서로에게 큰절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설날에는 부모님께 드리는 세배, 차례를 지낼 때, 제사를 지낼 때, 모두 절을 했다. 절에서도 스님들은 어디서든 알든 모르든 처음 만나면 먼저 엎드려 절을 한다. 절은 우리 생활의 일상이었다.

이렇게 흔하게 일상처럼 했던 절이 요즘엔 사라지고 있다. 편리함과 간소화에 밀려 모든 의식이나 인사가 고개만 까딱하거나 악수로 대신한다. 자신을 낮출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 상대를 공경할 줄 모르고 귀한 줄 모르는 아수라장에 우리가 살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위아래 질서도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절은 자기 몸과 마음을 굽혀 낮추는 행위다. 그런 절을 하지 않게 되니 자연히 질서가 사라지고 아수라장이 되는 것 아닐까.

그래도 사찰에서는 절로 시작해서 절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좋아도 절을 하고 싫어도 절을 한다. 절에서는 ‘하심’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마음을 낮춘다는 뜻이다. 잘난 마음을 낮추고 내려놓는 방법이 바로 절이다. 머리를 제일 낮은 곳인 땅에 닿도록 하는 게 오체투지이다. 교만심이 높고 아만심이 하늘을 찔러도 절을 하다 보면 그 마음이 저절로 수그러든다. 성냄이나 증오도 봄눈 녹듯이 사그라진다.

현덕사는 템플스테이 사찰이다.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어 전국 각처에서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온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올해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 왔었다. 그것도 최장 3박4일로 예약을 하고 말이다. 그냥 쉬고 싶어 왔단다. 쉬면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방법을 일러주고 싶었다. 삼천배를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청년은 선뜻 하겠단다. 나는 절하는 법과 몇 가지 유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법당에 좌복을 깔아주고 물도 한 병 준비해 주었다. 청년은 점심 공양 후 바로 시작해서 밤 10시쯤 무사히 삼천배를 마쳤다. 젊어서 그럴까, 나름대로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럴까, 절을 다 끝내고도 생기가 넘쳤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다는 성취감으로 충만한 얼굴이었다. 세상 어딜 가도, 어떤 난관이나 어려움도, 거뜬히 헤쳐 나갈 자신감으로 행복해 보였다.

삼천배는 자신과 하는 싸움이다. 그 싸움만큼 힘든 싸움은 없을 것이다. 자신을 이기면 어떤 것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삼천배를 무난히 한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다 하고 났을 땐 무한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권해 보기도 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지금까지 서너 명뿐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게 삼천배다. 자기와 하는 싸움은 그렇게 힘든 것이다.

대체적으로 스님이나 불자는 절을 잘한다. 나도 현덕사 불사를 시작할 때 전국의 관음성지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보궁 아홉 곳 그리고 현덕사까지 열 곳에 다니며 삼천배를 하였다. 그렇게 삼천배를 해서일까, 지금까지 별 장애 없이 불사를 할 수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참회의 절은 처음 몇 백배까지 시킨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분노가 폭발한다. 하지만 천배를 하고 이천배쯤 하면 헐떡거리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삼천배를 다 할 때쯤이면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모두가 나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잘 살아야겠다는 진정한 참회의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절은 사람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힘이 있다.

절은 자기 수행의 기본이다. 절은 사찰의 부처님 앞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좌복 한자리만 깔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면 할 수 있다. 누구든 하루에 108배씩만 한다면 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절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심’을 배우게 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공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싹터, 삭막한 세상이 자비심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581163
출처 : 중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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