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산 이야기

게시물열람
제목

현덕사 주지스님 불교신문 수미산정에서..

작성자
등록일2009년 11월 30일 (12:33)조회수조회수 : 4,289
  HOME > 대중공사 > 수미산정

까치밥

현종스님 / 논설위원·강릉 불교환경연대 대표

얼마 전 도반이 있는 산사(山寺)를 다녀왔다. 어느새 단풍도 다 떨어지고, 나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도반을 만난다는 기쁨도 잠시 뒤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찬바람이 지나갔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산길 옆에 있는 감나무들이었다. 지난 가을 초입에 왔을 때만 해도 마치 108염주를 걸어 놓은 듯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마음까지 넉넉해져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새들의 겨울양식

그런데 그날은 감나무에 감이 하나도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따간 것인지, 아니면 등산객들이 싹쓸이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 감나무에게서 ‘무소유의 기쁨’을 발견하기 보다는 씁쓸한 생각이 앞섰다. 그렇다고 감나무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감을 몽땅 털어간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을 무렵이면 감나무는 악동들의 차지였다. 떫은 감을 한입 베어 물고 혼났던 기억이 아련하다. 마을 어른들은 감을 따서 홍시를 만들었다. 눈 내린 겨울밤 가족들이 화롯불 곁에 모여 앉아 먹던 홍시는 꿀맛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렇게 감나무는 많은 것을 주었다. 그 혜택은 사람만 받지 않았다. 마을의 어른들이나 악동들은 감을 털어도, 한 가지 무언의 약속을 지켰다. 감나무에 감이 많이 달려 있던, 그렇지 않던 반드시 지켰던 약속이다. 언제 누가 그런 약속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약속을 어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까치밥’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의 감나무마다 몇 개의 감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남은 몇 개의 감은 까치를 비롯한 새들의 겨우내 양식이 되었다. 지금보다 살림살이가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까치밥’을 남겨놓는 여유가 우리에게는 있었다.

그런데 도반을 만나기 위해 찾았던 어느 산길에 있는 감나무에는 감이 단 한개도 달려 있지 않았다. 물론 남겨놓은 몇 개의 감이 바람에 떨어질 수도 있고, 성미 급한 까치가 와서 다 먹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10여 그루의 감나무가 모두 같은 상황인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같은 일이 여기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곳도 대부분 감나무 역시 비슷한 처지다.

염치없는 인간의 욕심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지금이 더 살기 좋다고 한다. 먹을거리도 풍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굳이 까치밥까지 건들지 않더라도 배를 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이유로 까치밥에 손을 댈까. 그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고,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은 아닐까. 돈이 전부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올 겨울 까치들은 어떻게 겨울을 지낼까. 사람들이 까치밥 감나무에 대해 기억하고 있듯이, 까치들도 까치밥 ‘감나무의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단 한 개의 까치밥도 남겨 놓지 않고, 자신들의 배만 두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까치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옛날이 좋았어. 그래 많이 드시오.” 허탈하게 날갯짓을 하며 돌아가는 까치에게 염치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나부터 얼굴이 붉어졌다.

 

[불교신문 2579호/ 12월2일자]

2009-11-28 오후 12:33:51 / 송고
코멘트현황
코멘트작성
※ 삭제나 수정시에 사용할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게시물처리 버튼
새글 작성하기 ▲ 다음글 보기 ▼ 이전글 보기 목록보기
게시판검색
자유게시판
순번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수
883 스님 건강 하시지요?
금산거사 / 10-08-19 (목) / 조회 : 4,100
금산거사10-08-19 22:354,100
882 현덕사 수능100일 기도입제
현덕사 / 10-08-11 (수) / 조회 : 4,453
현덕사10-08-11 19:594,453
881 1박 2일 템플스테이 잘 다녀왔습니다..[1]
이문종 / 10-08-11 (수) / 조회 : 4,276
1
이문종10-08-11 15:444,276
880 스님 복 더위에 어찌 지내시나요?
임성빈 / 10-08-08 (일) / 조회 : 4,316
임성빈10-08-08 11:024,316
879 어린이 여름불교학교 소감문 1
현덕사 / 10-08-05 (목) / 조회 : 4,110
현덕사10-08-05 17:444,110
878 강릉 현덕사, 5년째 특전사 장병에게 대중공양 ‘화제’(불교신문)[1]
현덕사 / 10-08-04 (수) / 조회 : 4,935
1
현덕사10-08-04 15:484,935
877 마음 쉬는 휴가(불교신문 수미산정)
현덕사 / 10-08-04 (수) / 조회 : 4,184
현덕사10-08-04 15:444,184
876 늦게 글올립니다[2]
조영래 / 10-08-04 (수) / 조회 : 4,234
2
조영래10-08-04 14:474,234
875 수련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현덕사 / 10-08-03 (화) / 조회 : 4,438
현덕사10-08-03 21:124,438
874 그런데 내일에 캠프 가려구해요☆
/ 10-07-29 (목) / 조회 : 3,933
10-07-29 19:283,933
873 특전사 해척조훈련장 대중공양을 다녀와서....
심은현 / 10-07-25 (일) / 조회 : 4,369
심은현10-07-25 00:354,369
872 해척조 훈련 특전사 위문[1]
풀향기 / 10-07-22 (목) / 조회 : 4,913
1
풀향기10-07-22 19:344,913
871 반려동물영가천도재
여태동 / 10-07-21 (수) / 조회 : 4,498
여태동10-07-21 13:114,498
870 만월산의 여름밤은 시원 하겠지요?[1]
임성빈 / 10-07-18 (일) / 조회 : 4,166
1
임성빈10-07-18 07:424,166
869 현덕사 선방 대중공양 가는 길...[1]
/ 10-07-17 (토) / 조회 : 4,393
1
10-07-17 00:234,393
868 잘 쉬었다가 왔습니다. ㅎ[1]
김송이 / 10-07-16 (금) / 조회 : 4,176
1
김송이10-07-16 15:544,176
867 현덕사 극락전 기공식을 원만회향하였습니다.
/ 10-07-13 (화) / 조회 : 3,987
10-07-13 09:213,987
866 행복한 기부(시주)를 만드는 모금교육
불교인재원 / 10-07-09 (금) / 조회 : 4,040
불교인재원10-07-09 17:134,040
865 군부대 대중공양
현덕사 / 10-07-09 (금) / 조회 : 4,157
현덕사10-07-09 10:564,157
864 현덕사 하안거 대중공양 안내
현덕사 / 10-07-09 (금) / 조회 : 4,135
현덕사10-07-09 10:544,135
게시판 페이지 리스트
새글 작성하기
계좌안내 : [농협] 333027-51-050151 (예금주 : 현덕사)
주소 : (25400)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싸리골길 170 (삼산리, 현덕사) / 전화 : 033-661-5878 / 팩스 : 033-662-1080
Copyright ©Hyundeoksa. All Rights Reserved. Powerd By Denobiz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