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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숭례문-아시아투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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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09년 02월 13일 (15:15)조회수조회수 : 3,716
[칼럼]눈물 흘리는 숭례문



현종 스님 / 강릉 현덕사 주지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 연휴가 끝나는 날 참혹한 소식이 들려왔다. 숭례문의 비보(悲報)를 듣고 말문이 막히고 눈앞이 깜깜했다. TV를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그저 지켜보는 방법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소방차들이 쉬지 않고 물을 쏟아내며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끝내 숭례문을 구하지 못했다. 지난 600년간 우뚝 서 있던 숭례문이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마지막 비명을 지르듯 뿌연 연기를 토해내며 힘없이 넘어지는 숭례문을 차마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다.

밤잠을 설친 다음날 화마(火魔)에 쓰러진 숭례문을 찾았다. 전날 화재 진압을 위해 뿌려진 물이 땅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숭례문의 눈물’이었다. 산산조각난 기왓장과 부러진 목재들 속에 숭례문은 고개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울고 있는 숭례문에게 과연 어떤 위로를 해 줄 수 있을까. 처참한 숭례문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답답하고 참담할 뿐이었다.

조선 초에 세워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위용을 잃지 않았던 숭례문은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허망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왜적과 청나라의 외침(外侵)에도 흔들림 없었던 숭례문.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던 전장(戰場)에서도 큰 손상 없이 보존되었던 숭례문. 선조들과 고락(苦樂)을 같이 하며 민족의 상징이었던 숭례문을 우리들은 눈 뜬 채 화마(火魔)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숭례(崇禮). 예를 숭상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숭례’는 고사하고 ‘엄청난 결례(缺禮)’를 범했다. 선조들이 지켜온 그 문(門)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후손에 전해주지 못하고, 상처투성이로 물려줘야 하는 ‘공동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불과 3년 전 천년고찰 낙산사를 화재로 잃은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비록 산불이라는 천재지변이었지만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낙산사를 눈물 흘리며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그런데 또 다시 서울 한복판에서 600년이 된 문화유산을 화마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어떤 존재든 사라진 뒤에 그리움은 더욱 커진다. 있을 때 그 고마움을 미처 모르는 것이 삶이다. 불교에서는 유정(有情)ㆍ무정(無情)의 모든 존재에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품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심지어 돌과 나무에도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눈으로는 숭례문도 부처님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과 같은 숭례문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다.

불타 버린 숭례문을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복원 하더라도 완전히 똑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 일과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록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비판을 들을지라도 또 다시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숭례문 외에도 선조들이 물려준 수많은 문화재들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숭례문과 낙산사처럼 허무하게 훼손되거나 잃는 비참한 일을 반복해서는 절대 안 된다.

과학문명과 기술이 발달되어 있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성과 배려이다. 선조들의 혼이 배어 있는 문화재를 정성스럽게 대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이 일어난 것이다. 비록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숭례문의 참사’를 교훈으로 삼아 ‘또 다른 숭례문의 참사’가 반복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최소한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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